우울증 고백 후 내 우울증은 한낱 ‘핑계’가 되었다
“다 네 탓이야” 교수님의 말에, 나는 내가 정말 잘못한 줄 알았다
나는 연구를 정말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고, 세상에 없던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다.
그 꿈을 위해 연구실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바쳤다.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했고, 실패에 좌절하면서도 실험 데이터를 보며 다시 일어서는, 그런 하루하루가 고되었지만 분명 행복했다.
원래부터 나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발밑이 푹 꺼지듯, 우울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극심한 대인기피증까지 함께 끌고 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느껴졌고, 연구실 문을 여는 것 자체가 끔찍한 공포가 되었다.
결국 나는 3년간의 노력을 뒤로하고,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책 냄새와 식어빠진 커피 향이 희미하게 맴돌던 교수님의 연구실 공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 나는 내 인생의 가장 무거운 돌덩이를 옮기는 심정으로 그 문을 열었다.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날에 대한 이야기다.
우울이라는 깊은 터널 속에서, 내가 들었던 잔인한 말들과 그 말들을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우울증 고백 – 장면 #1. 싸늘한 커피잔 너머로 날아온 말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수십 번을 연습했던 말인데도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며칠 밤낮을 뜬눈으로 새우고, 밥은 모래알처럼 씹히던 나날들이었다.
더 이상 혼자서는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에, 나는 내 상태를 털어놓았다.
우울증이 심하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교수님께서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책상 위에 놓인 머그잔을 들어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컵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힘들어. 나도 마감에 학회 준비에 힘들어 죽겠는데, 오늘 아침에도 강의했어. 근데 너는 왜 못해?”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프거나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아, 내가 정말 나약한 사람이구나’ 하는 깊은 자책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우울에 잠식된 머릿속은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교수님의 말은 그 어떤 의심도 없이 나의 유죄를 확정하는 판사의 선고처럼 들렸다.
‘그래, 교수님은 저렇게 힘든데도 해내셨잖아. 그걸 못하는 나는 열정도, 의지도 부족한 실패자일 뿐이야. 내가 연구를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나 있을까?’
그 한마디에 내 3년의 시간은 한순간에 ‘의지박약’의 증거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어지는 말들을 거의 필사적으로 쏟아냈다.
사람들이 무섭다고, 연구실 동료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휴대폰이 울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고.
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내 말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거, 그냥 하기 싫어서 대는 핑계 아니냐?”
‘핑계’. 그 단어가 불에 달군 쇠처럼 내 가슴에 지져졌다.
반박할 기력조차 없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혼란과 함께 수치심이 밀려왔다.
‘어쩌면 정말 내 고통은 핑계일지도 몰라. 내가 나약해서, 이 상황을 견디기 싫어서 아픔을 과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안에 있던 마지막 믿음의 조각마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의심은 내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되었고, 나는 그의 눈에 비친 ‘책임감 없는 학생’이라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 고백 – 장면 #2. 텅 빈 연구실, 그리고 전화 한 통
결국 나는 연구실을 한동안 쉬기로 했다.
교수님께 인사를 하러 갔을 때, 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래. 너 없어도 상관없어. 할 사람은 많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문제아 하나 없어져서 다행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는 도망치듯 연구실을 나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내 방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교수님’이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지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없으니까 논문 진행이 하나도 안 되잖아. 이거 다 네가 책임져야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 없어도 된다’던 사람이, 이제는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모순적인 말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 말을 듣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역시 내가 문제였어. 내가 이기적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동료들이 고생하고 3년간의 연구가 물거품이 될지도 몰라.’
머릿속에서는 온갖 최악의 상황이 그려졌다.
내가 없어서 멈춰버린 실험들, 나 때문에 곤란해하는 동료들의 얼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나 자신.
그 거대한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또다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제는 안다, 그건 나의 잘못만이 아니었다는 걸
시간이 약이었을까.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둠 속을 한참 헤맨 뒤에야, 나는 아주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폭력이었고, 심리적으로 약해진 나를 마음대로 흔들려는 ‘가스라이팅’이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숨이 턱 막 막혀온다.
우울증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신호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다.
만약 당신도 그때의 나처럼,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내 탓 같아 괴로워하고 있다면, 이 글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증거가 되길 바란다.
관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