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의 우울증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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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정신과 진료

처음 정신과 문을 두드린 것은 스무 살의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반짝여야 할 나이에, 나의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온통 지배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없어서, 매일 어딘가에서 달려오는 차에 치여 이 고통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 가면, 약을 먹으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대학 생활

하지만 대학 생활은 그 희망을 비웃듯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몸은 납처럼 무거웠고, 정신은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듯했다.

초저녁에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잠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출석은 당연히 엉망이었고, 성적표에는 F가 낙인처럼 찍혔다.

그 붉은 글씨는 ‘너는 실패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나를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정신과 3급’ 현역 입대

신체검사를 앞두고,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당연히 공익이나 면제 판정이 나올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신체검사장에서 군의관은 내 서류 뭉치를 건성으로 넘기더니, 아무렇지 않게 ‘현역’ 두 글자를 던졌다.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싸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정신과 3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군대로 향했다.

군대라는 낯선 환경은 지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규정에 따라 나는 하루치 약을 주임원사님의 허락을 받고 나서야 겨우 받아먹을 수 있었다.

약물 자살의 위험 때문이었다.

통제된 환경과 규칙적인 생활도 나의 내면을 바꾸지는 못했다.

군 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 숨 쉬는 ‘나 자신’이 지옥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감옥 같은 군대 안에서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버려졌다는 절망감

시간은 흘러 전역을 했고,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복학을 하고 좁은 자취방에서 홀로 생활을 시작했다.

고립된 공간 속에서 매일 밤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다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더 이상은 자신도 나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보라는 권유였다.

버려졌다는 느낌과 함께 마지막 동아줄마저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항우울제

대학병원 교수님은 당시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약을 처방해주셨다.

그것은 SNRI 계열의 항우울제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내가 먹는 양은 의료적으로 허용된 최대치였다.

거기에 아빌리파이, 프로작 같은 약들이 더해졌다.

한 달 약값만 30만 원이 넘었다.

비싼 약값만큼이나, 이번에는 정말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 정도는 괜찮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평화는 길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약을 먹지 않고 지퍼백에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어느 밤, 모아두었던 약 한 웅큼을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죽지 않을 거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수없이 인터넷에 ‘항우울제 과다복용’을 검색하며, 이 약들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학원

그렇게 나의 위태롭던 대학 생활도 끝이 났다.

나는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낮과 밤도 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잠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정신을 다른 곳에 쏟아붓는 것이 유일한 마취제였다.

3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세상과의 단절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읽히지 않았다.

이전에도 깊은 우울 에피소드가 찾아왔을 때 겪었던 증상이었다.

활자들이 눈 위를 둥둥 떠다닐 뿐, 의미로 조합되지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밖을 나가는 것이 병적으로 두려웠고, 집 문을 여는 것조차 극심한 공포로 다가왔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했다.

이제는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그때, 그 약을 털어 넣었던 밤에,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 죽었더라면 지금의 끔찍한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설령 기적처럼 다시 나아진다 한들, 그것 또한 잠깐뿐이겠지.

모래성처럼 다시 무너져 내릴 순간을 기다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지금 이 고통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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