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이 나를 숨게 할 때 [회피성 성향의 기원과 본질]

#회피성 성향의 기원 #회피성 성향의 본질

어떤 이들은 새로운 관계나 낯선 상황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이들의 움츠러듦 뒤에는 단순히 소심함을 넘어선 복잡한 심리적 기제가 숨어있다.

타고난 기질이 성격의 기초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의 경향성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환경 경험이 요구된다.

회피성 성향의 중심에는 바로 그 경험들이 쌓아 올린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불안을 학습하는 아이들: 과잉보호의 역설

회피적 행동이 강화되는 대표적인 환경 중 하나는 부모의 과잉보호다.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늘 전전긍긍하는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순간마다 걱정부터 앞선다.

아이가 혼자 가게에 가려 하거나, 캠프에 참여하려 할 때, 안전이 완벽히 보장되지 않는 한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곁에만 두려고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새로운 상황을 잠재적 위험과 동일시하게 된다.

낯선 사람과 생소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곧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학습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느끼는 불안한 부모는,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아이에게 자신의 불안을 그대로 대물림하게 된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어떻게 다른가

정신분석가 Gabbard는 회피성 성격의 중심 감정을 ‘수치심(Shame)’으로 보았다. 이때 수치심은 죄책감(Guilt)과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죄책감은 스스로 지켜야 할 내적 규칙을 위반했을 때,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며, 벌에 대한 걱정과 연결된다.

반면에 수치심은 자기 내면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즉 ‘존재’ 자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나는 불충분하고 부적절한 존재다’라는 고통스러운 자기 평가다.

회피는 바로 이처럼 불쾌하고 압도적인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인 것이다.

‘틀린 생각’이 만든 감옥

Gabbard에 따르면, 수치심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한 사건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연령대의 발달 단계에서 경험이 누적되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세상에 대한 왜곡된 핵심 믿음을 형성하게 된다.

‘나는 근본적으로 부적절한 사람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나를 거부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닌, 잘못된 ‘생각’이다.

하지만 회피성 성향을 가진 이들은 이 생각을 절대적인 진실로 믿는다.

결국 이들을 대인관계와 세상으로부터 숨게 만드는 것은 거절이나 실패 그 자체가 아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내면 깊이 뿌리내린 수치심과 그로 인한 잘못된 믿음의 감옥이다.

(참고문헌 – 의존성 성격장애와 회피성 성격장애, 민병배 남기숙)

관련 글 읽기

회피형 애착의 숨겨진 진실 (방치와 과보호 사이)

회피성 성격장애의 내면과 인지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