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혹시 ‘진정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해 본 적 있는가?
많은 사람이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원하는 삶이 따로 있지만, ‘이래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보이지 않는 족쇄는 우리를 우울감, 무기력, 끝없는 불안으로 이끈다.
오늘은 바로 그 족쇄, ‘해야 한다’는 저주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다운 삶을 되찾는 여정을 함께 떠나보려 한다.
모든 불행의 시작, 어린 시절의 저주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평가의 기준은 놀랍게도 아주 어린 시절에 각인된다.
특히 자기애가 강한 부모 밑에서 자란 경우, 아이는 부모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부모의 이상을 따르면 ‘착한 아이’, 반항하면 ‘괘씸한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저런 애는 우리 애가 아니다.”
“그런 말 하려면 나가라.”
이런 말들은 아이에게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라는 죄책감을 심어주고,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씌워진 저주는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집을 나와 물리적으로 독립했더라도, 부모에게 지배받아온 사람일수록 진정한 정신적 독립을 이루는 과정은 혹독한 시련과 같다.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진짜 자기 자신은 서서히 질식하고 만다.
나를 병들게 하는 ‘완벽한 이상’이라는 착각
‘이래야 한다’는 완벽주의적 사고방식은 우울증, 섭식장애, 부부 불화, 학대 등 수많은 문제의 배경이 된다.
이는 완벽한 이상을 기준으로 현실의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완벽한 이상은 과연 누구의 기준일까?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일 가능성이 높다.
이 고통의 고리를 끊기 위한 첫걸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괴로워하는 나, 불안에 떠는 나, 실패하고 상처 입은 나.
그 어떤 모습의 나라도 바꾸려 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에 놓이면 절망하지만, 이는 단 하나의 가치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분명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선과 악,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놓아주는 용기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을 뜻대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며 자책한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은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오히려 인생에 필요한 지혜는 노력해서 될 일과 안 될 일을 분간하고, 안 될 일에는 애쓰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배우자나 자녀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과 같은 가치관과 행동을 기대한다.
그리고 상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실망하고 분노하며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상대는 어차피 나와 다른 인간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기대가 적으면 실망할 일도 줄고, 오히려 상대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줄 때 더 큰 기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혹시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면, 내가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먼저 돌아보는 것이 좋다.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기술
과거의 실수나 미래에 대한 걱정처럼,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생각해서 이득이 되는 것은 열심히 생각하자. 하지만 생각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생각하기를 멈추자.”
이것은 ‘자기교시법’이라 불리는 인지행동 요법의 한 기법으로, 효과가 증명된 방법이다.
뇌가 멋대로 생각하려 할 때마다 끈기 있게 스스로에게 이 말을 되뇌면, 놀랍게도 차츰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실패했을 때 자신감을 잃고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린다면, 보는 법을 바꿔보라.
실패야말로 대성공이 될 수 있다. 실패 없는 인생은 운전학원 안의 도로처럼 안전할지는 몰라도 아무런 재미가 없다.

의무감과 진정한 바람 사이
인생이 기쁨보다 고통이라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하고 싶은 것을 따르기보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얽매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책임을 다하는 것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진심으로 바란 것을 이룰 때의 만족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설령 그 시도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의무감이나 타인의 기대 때문에 한 일이라면 실패했을 때 실망과 한심함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자유와 책임 사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사람은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은 ‘자유’에 대한 바람과, 주변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책임감’을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이 둘이 일치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서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가족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인가.
어떤 철학은 의무를, 다른 철학은 욕망을 택하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자유도, 책임도 모두 소중하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적절히 손에 넣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이 둘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인생은 본래 타협의 산물이며, 완벽하고 이상적인 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것들 속에 의외의 행복과 평안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제 ‘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조금은 서툴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 문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오카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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