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대만 에너지 위기 (ft. T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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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크로 경제와 지정학적 이슈를 공부하면서 가장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주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는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할수록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국가는 다름 아닌 대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심장인 TSMC를 품고 있는 대만이 어쩌다 에너지 위기에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 현상이 글로벌 천연가스(LNG) 가격과 투자 시장에 어떤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동안 공부하고 정리한 내용을 기록 차원에서 공유해 보고자 한다.

대만 탈원전 정책의 역설

대만의 현재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정권을 잡은 민진당은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파격적인 ‘탈원전’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에너지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대만 내부에서 겪은 대지진의 뼈아픈 경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못지않게 지진이 잦은 국가이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재난에 대한 공포가 국가의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라는 거시적 판단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집권당은 기존에 가동 중이던 6개의 원자로를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멈춰 세웠고, 심지어 90% 이상 완공되었던 신규 원전 공사마저 전면 백지화했다.

탈원전

그들이 새롭게 제시한 국가 에너지 믹스의 목표는 LNG 50%, 석탄 30%, 신재생에너지 20%였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확인한 현실의 지표는 정책의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2025년이 되자 12%를 차지하던 원전 발전 비중은 계획대로 0%가 되었지만, 기저 전력을 든든하게 받쳐줄 것으로 기대했던 신재생에너지는 목표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1%를 달성하는 데 그쳤다.

결국 대만의 전력망은 천연가스인 LNG(47%)와 환경 오염 문제로 점차 줄여나가야 할 석탄(39%)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불균형한 구조로 굳어지게 되었다.

국가의 아킬레스건이 된 LNG와 중국의 해상 봉쇄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대만이 전력의 절반 가까이를 의존하게 된 LNG의 물리적 특성이다.

천연가스는 쉽게 기화되는 성질이 있어서 원유처럼 대형 저장고에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관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그때그때 필요한 물량을 바다를 통해 LNG 운반선으로 수입해야만 발전소를 돌릴 수 있는 구조다.

자료를 찾아보니 현재 대만의 LNG 저장 용량은 국가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11일분에 불과하며, 최근에는 비축분이 8일 치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마저 현지에서 들려오고 있다.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98%에 달하고, 들여온 물량의 83%를 전기를 만드는 발전용으로 당장 태워야 하는 대만에게 해상 운송로의 확보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중국이 틈만 나면 대만을 해상에서 포위하고 봉쇄하는 훈련을 강행하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명확해진다.

굳이 물리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더라도, 바닷길만 며칠 끊어놓으면 대만의 전력망을 붕괴시키고 국가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뼈아픈 약점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TSMC가 마주한 최악의 시나리오

이러한 위태로운 에너지 구조는 대만의 주력 산업이자 국가 방패 역할을 하는 반도체 산업과 최악의 엇박자를 낸다.

반도체, 특히 최첨단 미세공정으로 갈수록 막대한 전력이 소모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TSMC 1개 기업이 대만 전체 전력의 12.5%를 사용하고 있으며, AI 산업의 팽창과 함께 이 비중은 2030년 24%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대만에게 재앙에 가까운 타격이다.

대만으로 들어오는 천연가스의 약 30%가 바로 이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 핵심 루트가 막히면 현재의 빈약한 비축분으로는 기껏해야 한 달 정도를 버틸 수 있다.

석탄 발전을 100% 풀가동하고, 국민들의 전력을 통제하며 TSMC 등 핵심 산업에만 전력을 몰아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생존 가능한 시간은 한 달 반 남짓으로 늘어날 뿐이다.

호르무즈 해협 천연가스

패닉 바잉과 JKM 가격의 폭등: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나비효과

당장 전기가 끊길 위기에 처한 대만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공격적인 매수자로 돌변했다.

대만은 평소 LNG 물량의 75%를 장기 계약으로, 나머지 25%를 현물 시장(Spot Market)에서 그때그때 조달해 왔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가격을 불문하고 현물 시장에서 가스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2026년 3월 10일 자 파이낸셜타임즈(FT) 기사를 보면, 유럽으로 향하던 여러 척의 LNG 운반선들이 갑자기 뱃머리를 아시아로 돌렸다는 보도가 나온다.

천연가스는 구매 계약에 따라 최종 목적지를 바꿀 수 있는데, 판매자 입장에서는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주더라도 대만이 제시하는 막대한 웃돈을 받고 물량을 넘기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만의 ‘패닉 바잉’은 즉각적인 글로벌 에너지 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동북아시아(한국, 일본, 대만)의 LNG 현물 수입 가격을 나타내는 S&P의 JKM(Japan Korea Marker) 지표를 살펴보면 그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불과 한 달 전인 2월 초 MMBtu당 12~13달러 선을 유지하던 JKM 가격은 3월 9일 기준 24.8달러로 수직 상승하며 정확히 두 배가 되었다.

글로벌 AI 랠리로 막대한 달러를 거머쥔 TSMC와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살기 위해 가스를 입도선매하면서, 역설적으로 동북아시아 전체의 에너지 물가를 폭등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이 처한 현실

대만 내부에서도 뒤늦게 뼈아픈 자성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2024년 선출된 라이칭더 총통은 국가기후변화위원회를 꾸려 원전 재가동을 타진했고, 2025년 8월 마안산 원전 2기의 재가동을 묻는 국민투표에서는 무려 유권자의 74%가 찬성표를 던졌다.

탈원전을 주도했던 정당의 표밭과 원전이 위치한 핑둥 지역에서도 과반의 찬성이 쏟아졌다.

비록 투표율 저조(총유권자의 25% 미달)로 법적 요건을 채우진 못했지만, 대다수 국민의 심리가 이념보다 현실적인 생존 문제로 완전히 기울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 번 잃어버린 인프라와 시간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대학의 원자력 관련 학과들은 축소되었고, 핵심 운용 인력들은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간 뒤라 당장 신규 원전을 짓거나 재가동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상태다.

이번 이슈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이것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역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마지막 LNG 운반선이 3월 20일이면 도착을 완료한다.

그 이후로는 중동발 물량이 끊기게 된다.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물량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만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현물 시장의 물량을 선점하며 가격을 끝없이 끌어올리는 상황은 고스란히 한국의 에너지 수입 비용 증가와 산업 전반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대만 탈원전

이번 대만의 사례는 거시 경제의 흐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교과서 같다.

중동의 분쟁이라는 1차적 이슈가 해상 운송로 차단이라는 2차 파급을 낳고, 이것이 대만의 에너지 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불안과 동북아시아 에너지 물가 상승이라는 3차 파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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