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 #독박육아 갈등
생존을 위한 약속
나는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서 최근에는 나아지기 위해 상담을 받고 있다.
이 상담은 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나에게는 생존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나는,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처럼 전쟁과 같았다.
아이의 모든 것을 챙기며 나의 외출을 준비하는 것은 마치 두 개의 톱니바퀴를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돌리려는 시도와 같았다.
나에게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상담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잠들어 있는 배우자에게 몇 번이고 나직이 말했다.
곧 나가야 하니 아이를 좀 부탁한다고.
하지만 침묵은 무겁게 가라앉아 대답이 없었다.
홀로 아이를 돌보며 분주하게 준비를 마쳤다.
거울 속에는 잠을 설친 낯선 얼굴이 서 있었다.
마침내 현관을 나서야 할 시간, 아이를 부탁한다는 나의 마지막 말에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한마디였다.
“애 데리고 가던가, 가지 말던가. 알아서 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듯했다.
‘알아서 하라’는 그 말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나의 시간, 나의 고통, 회복을 향한 나의 모든 노력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폭력이었다.
아이를 데리고는 상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절박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 없어. 꼭 가야 해. 아이 좀 봐줘.”
나의 간절함은 분노가 되어 돌아왔다.
배우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나의 앞을 막아섰다.
그 앞을 나서려는 나와, 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배우자.
그 짧은 순간, 나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나의 역할, 나의 존재는 그 집 안에서 완벽히 부정당했다.
‘대단하다’는 말 뒤에 숨겨진 것들
사람들은 종종 한쪽이 육아를 전담하면 ‘대단하다’, ‘희생한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 칭찬이라는 얇은 포장지 뒤에는, 사회와의 단절감,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중압감, 그리고 ‘부모는 강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숨겨져 있다.
육아의 기쁨 이면에 찾아오는 깊은 우울감과 싸우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상담은 그 싸움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결국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집을 나섰다.
나를 치유하러 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가장 깊은 상처를 입었다.
상담에는 늦었고, 아이를 돌보느라 나의 이야기는 온전히 풀어놓을 수 없었다.
우리는 부모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느 힘든 아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존엄과 회복을 위한 노력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어떻게 외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육아라는 공동의 책임이 어떻게 한 사람의 희생으로 기울고, 그 희생이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지는지에 대한 씁쓸한 물음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슷한 무게를 견디며 애쓰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기 이전에, 먼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존중받고 지지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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